> [!abstract]+ 💡 Insight (이 텍스트는 김목사와 오권사 간의 대화를 통해 신앙이 개인의 트라우마 치유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탐구한다. 오권사의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녀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겼고, 김목사의 기도는 그녀의 영적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김목사와 대화 아들 트라우마 오 권사
따르릉.
전화벨이 울리자 김목사는 리모컨을 들어서 보던 뉴스를 끊었다. 아침에 주로 장사하는 사람들 전화를 하곤 했다. 업무용 신용 카드를 만들라든지, 주차장 보수를 하라든지 주로 그런 것들이었다. 그러려니 하고 김목사는 사무적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목사님 저예요. 오권삽니다.」
「아. 권사님이세요. 무슨 일이신가요.」
「목사님, 전화로 기도를 해주세요.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견딜 수가 없네요.」
「갑자기 그런 건가요?」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것처럼 김목사는 오권사에게 물었다. 오권사는 고향이 본래 이북 평양이다.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교육을 잘 받으며 자랐다. 자식이 둘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한국에서 현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작은 아들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직장 때문에 아랍 에미레이트로 건너갔다가 거기서 죽었다.
「아니에요. 어제 저녁부터 그랬습니다. 본래 저는 고혈압인데 어제 저녁에는 혈압이 내려가더군요. 그러면서 움직이는 것이 힘이 들어 침대에 누워버렸지요. 그런데 침대에 누워있는데 누가 손끝을 건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손녀딸인 줄 알고 "한나니?"하고 손녀딸 이름을 부르면서 눈을 떴지요. 그런데 방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닙니까? 갑자기 소름이 끼치면서 겁이 났어요. 그래서 일어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어요. 기도를 드리니까 마음이 좀 가라앉았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까 머리가 아프기 시작해서 지금은 너무 아파요. 지난번처럼 목사님께서 기도해주시면 낳을 것 같아요.」
본래 김목사는 오권사를 대할 때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처럼 대한다. 나이도 어머니뻘 될 뿐 아니라, 김목사 아버지도 평안도 출신으로 월남하신 분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물론 오권사도 그런 김목사의 태도를 느끼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오권사는 몸이 아프면 전화로 김목사의 기도를 청하곤 했다. 김목사가 전화를 해주고 나면 오권사는 아픈 몸이 회복되곤 했다. 그래서 김목사는 오권사에게 밤중에도 괜찮으니 아무 때나 필요하면 전화를 하라고 했다. 언젠가는 김목사가 동네 뒤에 있는 산을 오르다가 중턱에서 오권사의 전화를 받고 기도해준 적도 있다. 김목사가 무얼하든지 오권사는 아플 때는 김목사의 전화가 절실했고 김목사 역시 개의치 않고 전화로 기도를 해주었다. 기도는 다음과 같이 짧았다.
「예수님, 오권사님이 지금 몹시 어지럽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오권사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어주셔서 모든 질병들이 떠나가게 해주시옵소서. 성령의 불로 오권사님을 덮어 주셔서 오권사님의 영혼을 밝은 빛으로 비추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오권사님을 지켜주셔서 사탄 마귀 귀신들이 침범하지 못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권사님, 하나님이 고쳐주실 겁니다. 꼭 이기세요.」
전화를 끊고 김목사는 오권사에 대한 생각을 했다. 오권사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오권사는 자신이 영적으로 본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곤 했다.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녀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거의 식음을 전폐했고 그 결과로 몸은 극도로 허약해져 나중에는 의사조차도 손을 델 수 없을 정도로 악화 되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어느 날 꿈인지 생시인지 환상 중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자신을 치료해주셨다고 한다. 그날부터 몸이 급격하게 좋아지면서 몇 주만에 모든 생활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오권사에 비하면 김목사의 영적 체험은 그렇게 극적이지는 않다. 김목사가 본 것이라고는 중학교 시절에 부흥회에 참석해서 방언을 받을 때 본 예수님 환상 그것이 전부였다. 그 이후로는 꿈이라면 모를까 기도하면서 환상이라는 것은 본 적이 없다.
갑자기 김목사에게 최목사가 생각났다. 신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한 수재였다. 졸업할 때까지 과에서 한번도 1등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까지 유학 와서 성서신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친구였다.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가서 대학에서 가르치고 싶었지만 이 친구에게는 이렇다 할 인맥이 없었다. 한번은 한국에 이름 있는 대학에서 성서신학 분야에서 교수를 구한다는 신문광고를 보고 지원을 했다. 그리고 비싼 비행기 표를 사서 한국에 가서 인터뷰까지 마쳤지만 떨어졌다. 사실 그 대학은 형식상으로 교수 광고를 냈을 뿐 이미 내정자가 있었던 것이다. 순진한 이 친구는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지원과정에 임했던 것이다. 결국 이 친구는 학교 교수가 실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찍 깨닫고 목사가 된 것이다. 그런데 가는 곳 마다 목회에 어려움을 경험했다. 자신의 목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 친구는 김목사에게 자신은 목회에 적성이 안 맞는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친구 최목사가 몇 달 전에 중형 교회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몇 일전에 전화로 최목사는 목회하기가 너무 어렵다면서 다음과 같은 푸념을 털어 놓았다. 교회 교인들이 영적으로 뭘 봤다, 뭘 들었다고 하는데 목사인 자신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고 아무것도 들리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을 보면 "천사가 나타나고, 귀신이 말을 하고,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병을 고치고...." 그런 사건들이 많이 나오는데 목사인 자신은 그런 영적인 것은 경험한 적도 없고 믿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이 어느 시댄데 그런 샤마니즘적인 종교생활을 하느냐는 것이다. 성경에 그런 표현들은 정신분석학에 입각해서 때로는 사회정치학에 입각해서 이해하면 되고 설교도 그런 방향에서 성경을 풀이해주면 되는데 교인들은 무식하게 있는 그대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병이 나면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치료받으면 되는데 왜 자꾸 기적 같은 것은 믿지도 않는 목사에게 기도해달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인들에게 대놓고 자기는 영적인 것을 믿지 않는 목사라고 할 수도 없다던 친구 목사의 탄식이 김목사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도대체 목회를 한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